어머니께, 교육감 선거에 대해
아직 새벽 1시이지만, 오늘은 교육감 선거일입니다. 이 선거는 앞으로 4년간 태욱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우며, 그 결과로 어떤 삶을 만들어 나갈지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일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선거임에도 일하느라 바쁘신 어머니로서는 각 후보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뉴스를 보면서 말씀하신대로, 제가 아는 선에서 주요 후보들의 정책을 정리하고 제 생각을 덧붙여서 선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하려고 합니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는 총 6명의 후보가 출마했습니다. 그 중 현재 기호 1번의 공정택 후보와 기호 6번의 주경복 후보가 박빙의 접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일단 두 후보에 중심을 두고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공정택 후보는 특목고(특수목적고등학교)와 자사고(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제도의 확대를 주장했습니다. 일반 고등학교의 3배에 달하는 높은 학비를 걷는 이들 학교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가혹한 입시 경쟁과 사교육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물론 보다 나은 연구를 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경쟁이나 보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처럼, '경쟁'이 실질적인 복지의 증진을 유도한다면 나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고등학교 입시에 합격하기 위한 경쟁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고등학교 입시는 적절히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평가하면 충분하며, 그 이상의 경쟁은 학생들을 피로하게 하고 학부모들에게 사교육비 부담을 안겨줄 뿐,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로 창출하지 않습니다. 특목고나 자사고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은 중학교까지의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시험 점수를 받기 위한 기술 등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이 됩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그런 경쟁을 할 시간에 세상과 삶을 직접 경험하고,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좀 더 깊은 생각을 한다면 그 쪽이 훨씬 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은 풀어주면 게임만 할 거다'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학생들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 우리가 그들을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어른'으로 길러낼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경복 후보는 특목고의 일종인 외국어고들 중 상당수가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단순한 서열화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 중에 실제로 외국어에 관심이 많아서 입학하는 학생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주 후보는 위에 언급한 이유들을 감안하여 특목고들 중 목적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일부를 폐지하고, 대신 공립형 대안학교의 설립을 주장했습니다. 저는 이 주제에 대해 주 후보의 주장 쪽이 보다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학생들의 인권, 즉 '사람으로서의 권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공정택 후보는 두발 단속에 대해 학교측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답변한 반면, 주경복 후보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학생들이 머리를 짧게 깎으면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주장은 조선 사람들에게 강제로 단발령을 내린 일제 시대로부터 현재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만, 여기에 대해 실증적인 증거가 제시된 적은 없이 오로지 '주장'만이 있을 뿐입니다. 상식적으로, 두발 단속을 받지 않는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의 학생들이 그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지, 그로 인해 그 나라들이 발전을 못하고 있는지만 생각해 봐도 간단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저 또한 17살 나이에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면 당장 걸렸을 정도로 머리를 길게 기른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이 제가 공부하는 데에 방해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우리나라의 헌법은 (학생들을 포함하여) '모든 국민'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규정된 가치를 지키는 것이 보수주의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지키겠습니까?

공 후보는 학생들의 연애를 강력히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성행위에 대해서는 "퇴학 등 무겁게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퇴학된 학생들을 기다리는 삶에 대해 몇 분이나 생각해 보고서 전체의 약 10퍼센트, 수십만명에 달하는 학생들에 대해 퇴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우리나라 법의 근본 원칙은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으면 죄가 아니다'이며, '죄가 아니면 처벌하지 말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성폭력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학생에 대해 강력히 제재하는 것은 당연하나, 본인들의 동의에 의한 연애를 금지하겠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머리 모양을 마음대로 결정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를 뒤흔드는 몰상식한 주장입니다. 그 반면 주 후보는 "미성년자의 성행위를 금지할 수 없으나,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성교육을 전면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이 주제에 대해서도 주 후보의 주장 쪽이 보다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토론 등에 응하는 자세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공정택 후보는 시민선택 토론회, 프레시안 인터뷰, 장애인교육권연대 토론회, 교육방송 토론회, 교사불자연합회 토론회 등 사실상 거의 모든 토론회에 불참하여, 정책에 대한 검증의 자리를 모조리 피해가고 있습니다. 또한 질의응답에서도 상당수의 곤란한 질문에 대해 응답하지 않아서, 이 글을 쓰면서도 자료를 찾기 위해 꽤 열심히 뒤져야 했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 부끄럽길래 정책에 대한 검증을 그토록 극구 피하면서 이념적인 여론몰이에만 몰두하는 걸까요? 이 점으로 봐도 저는 공 후보의 교육감으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럽습니다.

그 밖에도 쓰고 싶은 내용은 더 있지만 밤이 늦어서 이만 자야겠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신 데 감사드리며, 선택에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by esproj | 2008/07/30 03:49 | 사회과학 및 인문학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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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esproj at 2008/07/30 09:19
위에 쓴대로, 어젯밤 뉴스를 보던 중에 어머니가 선거 상황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서 어떤 후보가 좋을지 설명해 달라고 하셨는데, 저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쪽이 더 편해서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정작 오늘 아침, 부모님 두분 다 바쁘게 시장에 가야 한다며 읽지 않고 나가셨네요. 사흘만 더 일찍 썼어도 훨씬 좋았을텐데. 타이밍이 맞지 않는 건 제 인생의 특징이겠거니 생각하고 일단 부족한 잠이나 보충해야겠습니다. 투표는 오후 2시쯤에 할듯.
Commented by esproj at 2008/07/30 10:33
...쓰는데 걸린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인쇄해서 점심시간쯤에 부모님 일하시는 곳(걸어서 10분 거리)에 가져가 봐야겠습니다. 일단 배고프니 아침부터 먹어야지.
Commented by 琳☆ at 2008/07/30 11:04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esproj at 2008/07/30 21:53
아버지랑 같이 투표하고 왔는데, 어머니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호적지가 달라서 다른 동네에서 투표해야 합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 선관위 홈페이지(http://www.nec.go.kr/)에서 개표 결과 중계 보고 있는데, 이거 생각보다 재밌음. 지금까지 대체 몇번이나 뒤집혔는지, 진짜 아슬아슬하네요. 현재 공 77,031, 주 77,217.
Commented by esproj at 2008/07/30 22:35
공 233,625, 주 225,178. 슬슬 희망이 안보임.
Commented by esproj at 2008/07/31 01:05
게임은 끝났습니다. 결과에 무관하게 꽤 재밌게 구경했네요. 결과로 말하자면, 서울 전체의 결과보다 우리 집의 결과 쪽이 더 재밌었습니다. 제 글은 최소한 두 사람의 표를 바꾸었거든요.

이 글을 읽으신 12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도 제 글이 약간이나마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믿습니다. 아무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이만 자야겠네요. 다들 좋은 밤 보내십시오.
Commented by esproj at 2008/07/31 02:06
잠이 안와서 노는 중인데, 글에서 오류 하나 수정하겠음. 원래 임기가 4년이긴 한데 2010년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선거를 같이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임기가 1년 10개월이라네요. 아 진짜 자긴 자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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