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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알랭 콘느(Alain Connes)와 생물학자 장피에르 샹제(Jean-Pierre Changeux) 사이의 대화 내용을 수록한 책이다. 물론 콘느는 바로 그 필즈 메달 수상자이며 <Noncommutative Geometry>의 저자.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 약간 인용한다. 샹제: "자연 현상의 구조"라는 말에, 저는 "우리 두뇌에서"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군요. 콘느: 글쎄요. "우리 두뇌에서"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외부 세계의 인식이 우리 두뇌에서 일어난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샹제: 바로 그것입니다! 콘느: 좋아요. 하지만 우리는 외부 세계가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데 합의하지 않았던가요? 샹제: 그랬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외부 세계를 두뇌와 감각 기관을 통해서 이해할 뿐입니다. 콘느: 우리와 수학 세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학 세계는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수학자가 동의하듯이 수학 세계의 구조는 개개인의 인식과 무관하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외부 세계가 두뇌를 통해 인식되듯이, 수학 세계가 두뇌로 이해될 경우에만 실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샹제: ...... "외부 세계가 두뇌를 통해 인식되듯이"라는 표현에서 동의하기 힘듭니다. ...... 비교나 비유는 결코 증명이 아닙니다. 책 전체를 볼 때 샹제의 입장은 '과학자의 정신'을 나타낸다고 할만 하다. (리처드 도킨스라면 이 토론에서 샹제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내겠지.) 가우스는 수학을 "과학의 여왕"이라 했는데, 비슷하게 말하자면 생물학은 "과학의 중산층"이라 하겠다. 수학 여왕이 설령 과학나라 사람이라 해도 평범한 국민의 표본으로는 몹시 어색한 반면, 생물학이라면 '비록 여왕처럼 아름답고 우아하지는 못해도, 우리가 이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1] 샹제는 수학적 대상들은 물리적 세계의 모형(model)일 뿐으로, 그것이 모사하는 대상보다 결코 먼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수학이라는 언어는 중국어라는 언어보다 먼저 생겨나지 않았다. 수학은 사랑이 그렇듯이 진화적 원리를 통해 발생한 인간의 뉴런들이 물리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과정에서 창발되는 현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콘느만큼은 아니라도 어느정도 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샹제의 입장에 대해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 것이다. 현대대수학을 학습한 사람에게 유한생성 아벨군(fin. gen. ab. gp.)이 꼬임(torsion) 부분과 자유 부분으로 분할되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그걸 알지 못하는 사람(우리도 한때는 여기에 속했다)이 있다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에게 그 기본정리가 종교나 예술처럼 사회적으로 구성될 수 있으리라는 건 넌센스이며, 그 정리는 유사 이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우주가 아닌 다른 우주에서도' 자명하게 성립한다. 우리는 마치 시각과 청각으로 외부 물리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듯이, '수각(數角)'이라 할 수 있는 일종의 제6감으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수학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그러므로, '아벨군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은 '눈앞에 보이는 사과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라는 생각 이상으로 기묘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어딘가'는 어디인가? 분명히 물리우주의 일부는 아니다. 허블 망원경으로 아무리 우주를 샅샅이 뒤져도 미분다양체와 코호몰로지 펑터와 극한서수들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모습을 관측할 수는 없다. 직관은, 오히려 우리의 물리우주 자체가 수없이 많은 수학적 대상들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3+1차원 준(pseudo-)리만다양체에 특정한 편미방을 만족하는 텐서장이 주어진 것, 혹은 그보다 더 복잡한 어떤 대상이겠지만, 그 역시 아마도 기껏해야 미분다양체 혹은 그보다 복잡한 어떤 대상들을 모아놓은 범주(category)의 수많은 대상(object)들 중 하나일 뿐이겠다.[2]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내가 대부분의 경우 구제불능의 과학주의적 유물론자이며 환원주의자란 사실을 잘 알겠지. 그런 사람이 수학에 대해서만 이런 플라톤주의를 내세우는 건 이상하지 않을까? 수학자들이라는 인간 집단이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은, 종교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확신하거나 중학생 집단이 혈액형-성격 상관관계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물론 약간 씁쓸한 해결책이지만, '존재한다'는 말의 두 의미를 구별할 수는 있다. 사과와 아벨군은 서로 다른 의미에서 존재하며, 보통 사람들이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할 때는 그것이 사과와 같은 의미에서 존재한다는 뜻이다. 물리적 세계에 눈에 띄게 간섭하는 신은 도킨스를 인용하면 "거의 확실히 존재하지 않"지만, 물리우주와 아무 상관없는 the class of all sets 같은 것을 신으로 모시는 사람에게는 기껏해야 '신이라는 단어를 참 특이한 뜻으로 쓰네요'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겠다.[3] 주석 [1]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가우스의 말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더라. http://www.postech.ac.kr/department/math/board/mathcomm/kimkt7.html를 참고하라. [2] '아마도'라는 표현을 쓴 건, 지난 25년간 지지부진한 고에너지 물리학의 발전으로 인해 어쩌면 물리적 세계가 실제로는 무한히 복잡한 거 아니냐는 체념의 목소리를 감안한 것이다. 무한히 복잡한 것, 유한개의 기호로 정의나 묘사될 수 없는 것, ZFC나 비슷한 종류의 체계를 벗어나는 것을 수학적 대상이라 할 수 있을까? 최소한 브라우어(Brouwer)처럼 수학을 '인간이 하는 것'이라 보는 관점에서는 불가능하며, 그보다 상당히 관대한 관점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인정하기를 망설이지 않을까. [3] 형식적으로 말하면 수학적으로도 모든 집합의 모임은 '존재'하지 않기에, 이 부분은 약간 악의적인 장난. 원한다면 콰인(Quine)의 새기초(New Foundations) 집합론을 믿어도 좋다. 하지만 위 글에서는 자세히 쓰지 않았지만, 수학자들은 심미적인 이유와 자신들의 경험 때문에 논리적 대상들보다는 수학적 대상들의 존재를 더 강하게 확신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관성을 위해서는 모든 잘 구성된 논리식, 심지어는 잘 구성되지 않은 논리식에 대해서도 동일한 존재론적 지위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는 '모든 집합의 모임'도 수많은 논리적 대상들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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