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이상하의 <과학 철학 - 과학의 역사 의존성>
내가 친구와 해당 책에 대해 메신저 상에서 대화한 내용을 대화 상대방의 허락을 얻어 이곳에 올린다. 대화하는 시점에서 나는 그 책을 3/4 정도 읽은 상태였다.

나:
5 제3의 침팬지 재레드 다이아몬드 2007-07-09 신청중
4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 아즈마 히로키 2007-07-09 신청중
3 전염병의 세계사 윌리엄 맥닐 2007-07-09 신청중
2 대한민국 이야기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 이영훈 2007-07-05 신청중
1 과학철학 이상하 2007-07-03 비치안됨
나:
다섯권 다 괜찮아. 아마도.
친구:
추천?
나:
저중에 저자명이나 책이름 들어본거 없어?
친구:
1번과 3번과 5번은 누군가 봤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던 것 같아
친구:
1번은 좀 유명하지 않나?
나:
1번을...???
나:
제일 무명일걸?
친구:
나야 읽어보진 못했지만
친구:
어레 ;
나:
'이상하'가 쓴 과학철학을?
나:
yes24에서 '과학철학'으로 검색하면 판매량 순으로 31권이 나오는데
나:
그 중에 31번째다.
친구:

친구:
하긴, 사람은 없던 것도 있었던 것처럼 기억하기도 한다고 하니까
나:
일시품절이네.
친구:
기분이 참 이상하네
나:
그런데도 도서관에서는 잘만 구하더라.
친구:
출판사 이름도 다시 보니 낯설고
나:
아무튼 그 책은
나:
http://goodking.new21.net/
나:
이 사이트 운영자가 쓴 거.
친구:
그런데 어째서 판매순위 31순위를 사려고 ;
나:
그 사이트의 '착한왕'이라는 인간 있잖아.
친구:

나:
예전부터 보고 있었는데, 이사람 생각을 좀 정리된 책으로 한번 읽어보고 싶었거든.
친구:
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그 사람에게 끌려서 도서관에 요청하게 된거야? ㅋ
친구:

친구:
오우. 문서 개수가. 대단히. 많군
나:
간단히 요약하자면, 쿤에 대한 비판으로서 구조주의가 갖는 약점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과학적 개념의 역사적 진화 등등을 제시하는 거야.
나:
전화받고 왔다.
나:
이봐 저 터무니없는 한줄요약으로 납득한 거야?
친구:
;;
친구:
솔직히 잘 모르니까
나:
일단 포퍼가 제시한 반증가능성의 개념은 들어봤어?
친구:
네가 저번에 이야기해줬어
나:
응. 포퍼가 처음에 제시한 형태는 여러가지 비판을 받은 게,
친구:
그런데 그 반증가능성 자체도 너무 엄밀히 따지고 들어가면 곤란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아
친구:
과학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범주가 너무 좁아진다는 이유였나
나:
뉴턴역학에 대해 딱 하나의 반례가 나왔다고 해서 그걸 점술이랑 동급으로 취급할 수는 없잖아.
나:
그렇다고 해서 반례의 숫자를 센다는 것도 좀 이상하고, 그렇게 해서 여러 가지로 싸움이 계속되었는데
나:
가장 대표적인 게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야. 무지 유명한 책이니까 들어보지 않았어?
친구:
응 ; 들어보기만
친구:
아 왠지 비참해
친구:
흠. 어쨌든,
나:
쿤은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제시해서,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 속하는 과학 이론은 공약 불가능하다. 즉 한쪽의 이론체계식 마인드를 가진 인간은 다른쪽 이론체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 (아주 간단히 요약한 거라 꽤 왜곡되긴 했지만.)
친구:
으음. 정말 읽어보긴 해야겠군
나:
서양철학이 다 플라톤에 주석달기라는 말 있잖아.
나:
그러니까 결국 이게 다 객관적 실재가 존재하냐, 우리가 그걸 알 수 있냐에 대한 논쟁이라는 건데
나:
중세철학까지는 뜬구름 잡는 식으로만 진행되던 이 논쟁에 르네상스 이후 과학이라는 요소가 개입하면서 좀 재밌어지기 시작했는데,
친구:
객관적 실재를 물리적 방법으로 규명하려는 시도가 활성화되었다는 거지?
나:
포퍼의 세계에서 객관적 실재는 존재하며, 우리는 관측을 통해 실재에 어긋나는 이론들을 하나하나 반증시켜서 가능성을 줄여나가면서 점점 실재에 근접해가는 거야.
나:
실제로 이게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세계에 대한 시각이지. 나를 포함해서.
친구:
음.
친구:
아 잠깐, 그런데
나:
쿤이 상대론을 뉴턴역학의 후계자로 볼 수 없다고 한 것은, 둘 사이에 동일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한쪽이 특정 물리량을 '더 정밀히 측정한다'고 말할 수 있냐는 거지.
친구:
그 반증가능성좀 다시 설명해 줄 수 있어?
친구:
특히 반증을 시도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경우에 대해서
나:
'모든 과학 이론은 반증될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
나:
음 그러니까.. 표준 모형 알지?
나:
표준 모형을 개발하는 시점에서부터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질 가능성은 고려되긴 했지만
친구:
그 양자역학 이야기 해줬을 때 나온 모형?
나:
응 70년대에 완성된
나:
어 너 오프라인이라고 나오는데 말좀 해봐
친구:

친구:
보여?
나:

나:
이상하네
친구:
뭐지
친구:
난 네가 정상적으로 온라인 상태로 표시되는데
나:
아무튼 표준모형 자체에서 중성미자는 질량을 갖지 않는 걸로 이론이 만들어졌어
나:
방금 로그인했다고 나온다
나:
근데 2000년 무렵에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진다는 게 판명되었고, 그 결과로 표준모형은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을 뿐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지.
나:
(질량이 워낙 작아서 측정하기 힘들거든.)
나:
다른 예. 어떤 종교인이 '신이 1999년에 강림해서 모든 인류에게 심판을 내릴 것이다'라고 주장했어.
친구:
뉴트리노.. 인가
나:
응 중성미자 = 뉴트리노 / 근데 1999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 종교단체에서는 '우리 단체에서도 그럴 가능성을 언급했다. 1999년에서 2005년으로 바꾸는 것은 사소한 수정일 뿐, 본질적인 교리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주장.
나:
전자는 분명히 과학적이고 후자는 분명히 비과학적인데, 그 경계가 대체 어디에 있냐는 비판이지.
친구:
흐으음.. 그럴 듯 한데
나:
엄격하게 해석하면 양쪽 모두 반증된 거니까.
친구:
그래서, 쿤의 이야기를 계속 하면?
나:
질량의 경우로 말하자면
나:
뉴턴적 질량과 상대론적 질량은 다른 개념이라는 주장이야.
나:
뉴턴적 속도와 상대론적 속도도 다른 개념이고.
친구:
다른 패러다임에 기반을 두고 측정된 거라서?
친구:
아니면 아예 정의가 다르고 개념이 다른거야?
나:
음.. 그 '정의'라는 게, 물리학의 기본 개념에 대해서는 수학의 개념처럼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게 아니니까.
나:
사실 뉴턴역학의 질량이라는 것을 측정할 방법도 없어.
나:
단지 물체가 물체에 가하는 중력이라는 것을 측정할 수 있고,
나:
모든 물체가 그 중력에 비례하는 질량이라는 숫자를 갖고 있다고 가정되어 있는 거지.
나:
저게 중력질량..이라고 하나? 그리고 관성질량이라는 것은 힘을 받았을 때 F = ma에 따라 m = F/a로 정의되는 것.
나:
(F의 정의를 ma로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순환적이지.)
친구:
흠.
친구: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은 동일시할 수 있고?
나: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일치한다는 것은 뉴턴역학에서는 단순한 가정, 일반상대론에서는 이론상 일치할 수밖에 없음.
나:
그래서 일반상대론이 깔끔한 거지.
친구:
하긴,
친구:
식을 두 개 붙여놓는 것보단 하나로 완벽하게 표현하는 게
나:
아무튼 쿤의 논점은 한 과학 이론이 다른 과학 이론보다 진보했다는 것을 무슨 근거로 말할 수 있나, 과학 이론들 사이의 연관성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거지.
나:
명확히 이론을 정립했다기 보다는 어느정도 정리된 이론에 문제제기를 한 사람이야.
친구:
음.
나:
구조주의라는 건 과학의 이론을 수학적 공리를 이용한 모델로 나타내고
나:
그걸 이용해 이론들 사이의 관계를 추상적으로 정립하는 과정인데, 간단히 설명하긴 힘들어.
친구:
물리, 생물학 등의 각 부문이 전부 융합되어 모델에 나타나?
친구:
멋있겠다
나:
뉴턴역학 같은 거라면 간단한데
나:
문제는 진화론이나 면역학 같은 걸 공리주의적 모델로 나타내기 힘들다는 거지.
나:
나도 겨우 어제 처음 읽은 내용을 설명하려니 쉽지 않군.
친구:
공리처럼 직관적으로 확 보이지 않거나
친구:
가정 자체가 너무 복잡한 개념을 담고 있어서인가?
나:
아무튼 결론으로 넘어가서, 이상하씨의 대안은
나:
뉴턴 시기에서 아인슈타인 시기에 이르는 학자들의 사고관을 분석해서
나:
갑자기 아인슈타인의 출현에 따라 상대론적 질량 개념이 난데없이 나타난 게 아니라
나:
수백년동안 뉴턴적 질량에서 상대론적 질량으로 서서히 진화해갔다는 걸 보이는 거야.
친구:
호오
나:
개념 자체의 정의는 서서히 변하지 않았지만, 그 용어를 사용하는 과학자들의 관념은 서서히 변해갔다는 거지.
친구:
음.
친구:
이건 이해가 힘드네
나:
응 저게 바로 책의 핵심 결론인 '과학의 역사 의존성'이니까 책을 안보고 간단한 설명으로 끝날 내용은 아니지.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도 힘들고.
나:
사실 다 읽지도 않았어.
친구:

나:
아무튼 엄격한 철학적 논의와 무관한 내 느낌이라면, 나는 실재가 존재(무슨 뜻이든)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가 실재에 대해 객관적 지식을 획득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매트릭스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해.
나: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각자의 마음 속에 담아두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에는 (특별히 이야기의 주제가 이쪽으로 넘어가지 않는 이상) 고려할 필요가 없는 가능성인 거지.
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가 내 이야기를 이해할 거라는 가정 하에서 하는 행동이니까.
친구:
뭐 그렇네
나:
특히 과학을 하는 동안은 세상이 진짜로 존재하고, 우리가 세상을 완벽하게는 아니라도 꽤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해도 좋을 거야.
친구:
왜?
나:
아니, 저 가정이 없으면 어떻게 과학을 할 수 있겠어?
나:
우리가 관측을 통해 얻는 정보가 왜곡된 거라면?
나:
우리의 인지 체계가 "심각하게" 불완전하거나, 어떤 사악한 악마가 우리가 관측하는 물리량의 값을 마음대로 조절하고 있다면,
나:
우리가 관측한 수성의 근일점 이동 현상이 실재에 대응된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겠지.
나:
그렇다면 과학은 의미가 없어.
친구:
음.
친구:
말이 좀 헷갈렸다
친구:
3번과 5번은 아마 여기서도 구해 볼 수 있으려나
나:
5 제3의 침팬지 재레드 다이아몬드 2007-07-09 신청중
4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 아즈마 히로키 2007-07-09 신청중
3 전염병의 세계사 윌리엄 맥닐 2007-07-09 신청중
2 대한민국 이야기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 이영훈 2007-07-05 신청중
1 과학철학 이상하 2007-07-03 비치안됨
나:
5번은 '총, 균, 쇠'의 저자가 새로 쓴 책이야.
나:
3번은 '전쟁의 세계사'를 쓴 사람의 전작.
친구:
전작들도 괜찮았어?
나:
총균쇠 읽어봤어?
친구:
;; 아니
친구:
총은 gun 균은 germ
친구:
쇠는 뭘까
나:
http://en.wikipedia.org/wiki/Guns%2C_Germs%2C_and_Steel

 

메신저 대화의 특성상 적당적당히 말하다 보니 왜곡된 내용이 군데군데 있으니, 이쪽에 대해 박식한 방문객은 너그러이 이해해 주길 바라며, 무식한(농담!) 방문객은 위에서 내가 말한 내용을 함부로 믿기보다는 그냥 간단한 소개 정도로 받아들이고 관심이 있다면 책을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일단 판매순위 31위라는 것부터 사실이 아닌 게, 정확도 순으로 나열했을 때의 순위가 31위이고 판매량 순으로는 17위이다.

그보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나의 일장연설은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책이 다루고자 하는 미묘한 논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나이브한 관점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진리근접'(verisimilitude)의 개념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사실 '나름대로 수학과 태생'인 나로서는 책에서 실패한 이론으로 다룬 구조주의의 관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이는데, 언제 이쪽에 대해 좀 더 자료를 찾아볼 생각이다.

by esproj | 2007/08/14 07:03 | 수학 및 자연과학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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